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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꽃밭, Flowers everywhere>, 갤러리 팔조, 2020. 전시 서문(작업 노트)

꽃밭 Flowers Everywhere

​홍해은

 

사랑에 빠지는 것은 매우 짧은 순간의 감각으로 이루어진다고들 하지요. 저는 그림을 보는 순간 눈이 즐거운 그림을 바라보게 되고 바라보다가 즐기게 됩니다(tmi지만 연애 상대를 만날 때도 처음 1초 안에 호불호가 정해지는 편입니다). 눈이 즐겁다는 것은 모호한 말입니다. 그것은 익숙하지 않은 낯선 자극일 수도 있고, 풍부한 색채와 편안한 형태에 대해 유전적으로 새겨진 만족감-생존에 유리한 시각적인 특성을 가진 것들일 수도 있고,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무겁거나 가벼운 형태와 색일 수도 있겠지요. 회화는 평평한 화면에 재료와 움직임, 시간이 합쳐져 관객의 눈과 만납니다. 눈으로 하는 이야기이지만 어떤 회화를 비난할 때는 너무 장식적이라든가 너무 예쁘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이 그림이지만 눈이 즐겁기 위해 그렸다고 말하면 좀 가볍다고 평가받을 것입니다. ‘꽃밭’은 꽃이 있는 밭이라는 원래 의미 외에도 ‘예쁘기만 한 것’에 대한 경멸이 담긴 표현으로도 종종 사용됩니다. 하지만 저는 꽃밭이 예뻐서 좋습니다. 눈이 즐겁기 위해 가꾸는 꽃밭은 얼마나 무용하면서 아름다운지요. 그 아름다움을 쫓아 전시 제목을 <꽃밭>이라고 정했습니다.

멋진 광경을 볼 때 흔히 그림 같다고 감탄합니다. 저는 보기에 즐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소유하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저는 그림을 보며 흥미로운 색들을 수집합니다. 이는 마음에 드는 색을 내 것으로 삼는 방법이며 앞으로 그릴 그림의 재료로 사용할 용도이기도 합니다. 글 쓰는 사람이 사용하는 어휘가 많다면 더 풍부한 표현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감각에 대한 어휘가 없다면 그 감각을 전혀 느끼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예컨대 ‘즐거움’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의미가 될 수 있는 만큼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오직 ‘즐거움’이라는 단어밖에 모른다면 즐거움과 유사한 미묘하고 다양한 감각들을 구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색에 대한 어휘가 많은 문화권에서는 색을 비교적 더 세밀하게 감각하기도 하지요. 이것은 전후 관계가 바뀌어도 성립합니다. 저는 어휘를 모으듯이 색을 모읍니다. 「색채수집」은 그림에서 마음에 든 색의 비율과 위치 등을 작은 종이에 수채로 빠르게 옮겨 그린 그림들입니다. 어떤 색이 어떤 색 옆에서 어떤 비율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 다른 색이 됩니다. 컴퍼스는 손이 의도적인 형태를 만들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컴퍼스가 그린 선은 시선의 이동을 돕고 둥근 선의 모양은 눈을 불편하지 않게 합니다. 즉, 색면의 모양과 선의 형태가 고유의 의미를 지시하지 않고 색을 표현하는 데에 도움을 줄 정도로만 그 역할을 최소화하였습니다.

2018년의 개인전 ‘Colored Lenses’ 에서는 「색채수집」을 통해 색을 고르고, 시각을 빠르게 자극하는 피상적인 이미지들을 모아 화면 위에서 이미지, 색, 붓질 등을 조합하여 전체 화면을 구성하였습니다. 이미지들을 캔버스 위에 놓다 보면 질서가 생겨났습니다.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에서는 이 과정을 반대로 하여 질서를 그림의 재료로 가지고 왔습니다. 이전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 무작위 세계의 에너지를 모아 캔버스 틀 안에서 규칙의 세계를 만드는 일이었다면, 이제는 규칙의 세계를 그림의 재료로 하여 그리는 과정에서 규칙이 깨지고 정확성이 사라지며 틈이 생겨나게 합니다. 색종이를 반으로 접고 그것을 다시 반으로 접어 손이 가는 대로 형태를 오려내어 종이를 펴면 4개의 반복적인 대칭 무늬가 생깁니다. 이 색종이들이 제 그림의 재료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대칭이고 반복일까요. 종이를 접으며 생기는 오차, 자르는 순간 손에 가해지는 힘 등 여러 이유 때문에 기계적인 대칭을 만들지 못합니다. 대칭성이란 수학적 언어로는 설명할 수 있지만 가위를 쥔 손, 붓을 쥔 손은 완벽한 대칭을 결코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저는 수학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수학적 질서 체계를 마음속에 가진 사람의 신체를 통해 질서의 어긋남과 틈, 불확실성을 표현하려고 합니다. 색종이의 형태는 대칭을 근거로 하여 생겨났으나 오려내고 캔버스에 그리는 동안 질서를 깨트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깨어진 틈에서 변화의 가능성이 생겨납니다. 그것은 살아감과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대칭을 전제하고 태어난 몸은 어디 한군데 정확한 대칭이 없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그 모양은 계속 바뀌니까요.

수집한 색과 형태들을 화면 위에 올려놓고 그 다음은 놀이를 합니다. 먼저 화면에 반복적인 대칭 형태의 색종이들을 배치하고 이 형태들을 보며 함께 놓여져 즐겁게 반응하고 응답할 색들을 「색채수집」에서 고릅니다. 그리고는 큰 붓질이 선명하게 드러나거나 아주 매끈하게 처리한 면으로 색을 그려내지요. 연이어 조밀해서 마치 면처럼 화면을 뒤덮는 점과 선들, 그리고 시선의 유희를 이끌도록 선처럼 흐름을 가진 면들을 쌓아 나갑니다. 마르기 전에 한꺼번에 그려서 서로 번지며 침범하는 면들이 있는가 하면, 말린 후 그리는 과정을 통해 레이어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면도 있습니다. 그렇게 명사로서 수집한 회화의 단어들과 동사로서 그리는 행위, 그 언어와 시간들을 축적해 나갑니다. 정해진 목표나 결말을 향해 완성해나가는 그림이 아니라 그려봐야 그려지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들이 시각적으로 즐겁기를 바랍니다. ‘즐겁다’라든가, ‘아름답다’라든가, ‘좋아한다’는 말은 제가 회화에서 가지는 감각이지 회화를 표현하는 언어는 아닙니다.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말보다 사랑에서 나온 행동이 더 구체적인 의미를 지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언어 자체가 행동이기도 하지요. 테드 창의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말하는 수행문적 언어처럼 말입니다.

“언어는 행위의 한 형태이기도 했다. 언어행위이론에 의하면 “당신은 체포되었습니다”, “나는 이 배를 이렇게 명명하노라” 혹은 “약속하겠어” 따위의 서술문들은 모두 수행문이다. 발화자가 이 행위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그 말을 입 밖에 내서 말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이다. (…) 수행문적 언어에서, 말하는 것은 그것을 실행하는 것과 등가인 것이다.”(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2016, p216)

이 그림들이 수행문적 언어처럼 ‘시각적 즐거움’이라고 앞서 모호하게 말했던 것의 실행이길 바랍니다. 정지된 평면 속에 과거(움직여 그리는 육체)와 현재(그림 앞에 마주선 순간 자극하는 감각), 미래(그림의 시각적 확장 가능성)가 공존하면서 말합니다. 그림이 ‘즐거움’을 재현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만 할 수 있는 수행이자 언어로서 말입니다. ‘그림 같은’, ‘그리고 싶은’ 것들을 그러모아 즐거움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저에겐 미적인 순간이며 삶을 사랑하는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꽃밭 Flowers Everywhere

Hong Haeeun

 

 

It is said that falling in love is a very brief moment of emotion. The moment I look at a picture, my eyes light up and I feel great joy. (However, when meeting a dating partner, I decide whether I like or dislike the person within the first second of meeting). The term "eyes light up" is ambiguous. It could be the excitement of unfamiliarity; it could be genetically engraved gratification for rich color and comfortable form - things with visual characteristics that are beneficial to survival or it could be heavy or light form and color that affects the mood. In a painting, materials, movements, and time are combined on a flat screen to meet the eyes of the beholder. It's a story that's told purely through visuals, but when it comes to critiquing a painting, phrases such as "too decorative" or "overly pretty" are often used. Pictures are pleasing the eye in many ways, but if you say that it was designed to be pleasing to the eye, it will be judged as being a little lighthearted. The title of this exhibition, < Flowers Everywhere >is used as an expression of contempt for "things that are superficially pretty". But I like flowers because they’re beautiful. How beautiful are flower gardens that are planted for the sole purpose of pleasing the eyes.

People use the term "picturesque" to describe beautiful scenes. If there is something that I see that is good to look at, I immediately want to make it into a painting. This also means that I want to own it. I look at the pictures and collect interesting colors. This is a way to make colors that I like my own and to use them as material for paintings in the future. If a writer has an extensive vocabulary, he/she can express himself/herself more abundantly. Without words that describe emotions, we wouldn't be able to feel any emotions from reading words. For example, the word ‘enjoyment’ may have no meaning as it can have a variety of meanings. If you only know the word “pleasure,” you will not be able to distinguish the subtle and varied sensations similar to pleasure. In cultures that have a wide number of words for different colors, they sometimes have a more profound sense of colors. (This is true even if the before and after relationship changes.) I expand my range of colors like a writer expands his/her vocabulary. 「Color Collection」 is a painting that quickly transfers the proportions and positions of colors in paintings that I have liked to a small piece of paper. Colors differ depending on which color is next to which color, at what proportion, and where. The lines drawn with the compass prevent the hand from creating intentional shapes. Here, the lines help to guide the eyes, and the shape of the rounded lines drawn with the compass makes the eyes feel uncomfortable. In other words, the shape of the color plane and the shape of the lines have been minimized to the extent that they help to express the color without indicating their own meaning.

In a solo exhibition called 'Colored Lenses' held in 2018, I chose colors through 「Color Collection」 and collected superficial images that are rapidly visually stimulating, and composed the entire screen by combining images, colors, and brush strokes on the screen. When I put the images on the canvas, order emerged. In the new works in this year's exhibition, I have reversed this process. I have brought order as a material for the painting. If painting is to collect the energy of a disorderly world and create a world of rules in a canvas frame, now, in the process of painting the orderly world based on rules as the material of the painting, the rules are broken, preciseness disappears, and gaps are formed. I folded the colored paper in half and folded it in half again and cut out the shape as my hand went. When unfolding the paper, 4 repetitive symmetrical patterns appear. These pieces of colored paper are the material for my painting. But is this really symmetrical and repeatable? I can't create mechanical symmetry for various reasons, such as the errors that occur when folding the paper, the strength applied to the hand at the moment of cutting, etc. Symmetry can be explained in mathematical language, but hands with scissors and brushes can never create symmetry. I am not trying to express mathematical beauty; I am trying to express the misalignment, gaps, and uncertainty of order that a person who has a mathematical order system in mind draws directly using the body. The forms of colored paper were formed on the basis of symmetry, but while they are cut out and painted on the canvas, they move in directions that break order and the possibility of change arises in the cracks. This is a concept that's pretty close to human life. The body born with symmetry all over has no exact symmetry in one place, and the shape changes continuously throughout the course of life.

 I put the collected colors and shapes on the screen, and then played with them after that. I first placed the pieces of colored paper with repeating symmetry on the screen. Looking at these forms, I picked colors from 「Color Collection」 and put them together to create joyful responses. I painted the colors with big clear brush strokes or on a very smooth surface. I build up the dots and lines that are so dense that they cover the screen like a surface, while also building up the surfaces that flow like lines catch and lead the eyes. There are surfaces that bleed together and invade each other due to painting them before drying, and some of the layers have been made clearly visible due to drying and then painting. Accumulating the words of paintings collected as nouns and painting them as verbs, I accumulate such language and times. It is not a painting with the aim of being completed when attaining a set goal or outcome, but a painting that is painted only by attempting to paint it.

I hope these paintings are pleasing to your eyes. Joyful, beautiful, and pleasant are words that describe the emotions I feel when looking at a painting, but they are not words that actually describe the painting. This is because they are ambiguous. Perhaps the actions of love have more specific meaning than saying the words “I love you”. But at the same time, saying the words “I love you” is also an action of love. Like the literary language spoken in Ted Chiang's novel 「Stories of Your Life」.

“But language wasn’t only for communication: it was also a form of action.  According to speech act theory, statements like “You’re under arrest,”  “I christen this vessel,” or “I promise” were all performative: a speaker could perform the action only by uttering the words. For such acts, knowing what would be said didn’t change anything...  With performative language, saying equaled doing.” (Ted Chiang, 『Stories of Your Life), 2016, p.216)

I hope that these paintings, like the performative language, are the practice of what was previously vaguely described to be 'visual pleasure'. In the stationary plane, the past (body painted in motion), the present (a sense of stimulation at the moment of looking at the painting) and the future (the possibility of visual expansion of the painting) coexist. The painting is not a representation or explanation of 'pleasure', but a practice and language that can be achieved only through painting. Collecting things that are 'picturesque' and things that I 'want to paint' and directing them towards bringing pleasure to people is an aesthetic moment for me and it resembles the way that I lov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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